삶의 파생; 결국 모든 것은 다 돈 때문이다.

오늘은 우중충한 3.1절이다.
그리고 전 세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매일 어질어질한 변동성 장세로 고전 중이다.
이런 미친 변동성 장세에서는
금융공학과 슈퍼컴으로 중무장한
헤지펀드조차도 이익 내기가 어렵다.
하물며 단검 하나 쥐고 있는
개미 말랑카우가 극대화된 변동성과
맞짱 떠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 자체가
그저 오만한 댓가를 정통으로 맞겠다는 소리다.
음의 복리는 장기적인 기하수익을 깍아먹는 주범이니 함부로 레버리지 투자를
하지 말라고 했거늘,
(거기에 수수료도 엄청나다)
서학개미 투자 규모 1위, 2위가
TQQQ(나스닥 상승 3배 레버리지)
SQQQ(나스닥 하락 3배 레버리지)
라는 건 정말 씁쓸한 일이다.
(3위는 당연히 테슬라겠지...)
편해진 금융투자 플랫폼은 오히려
개미들을 더욱 사지로 내몰고 있다.
스스로 언제든 모바일로 접속해
언제든 자발적으로 소음에 노출된다.
특히나 글로벌 경제의 소음과 변동성이
증가하면서 개미들은 정신 못차리고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비합리적인
자뻑 레버리지 배팅으로 소중한 자산을
실시간으로 녹여버리고 있다.
러시아 핵탄두보다 무서운 것은
금융 자본주의가 만든 다양한
금융 거래 플랫폼 살상무기다.
시장의 소음에 일일이 반응할수록
그 소음에 레버리지 토핑을 추가할수록
나의 자산은 빛의 속도로 녹아버린다.
제발 드론 위에서 당신 자신을 바라봐라.
늘 이야기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 100명 중에
소중한 1인이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지만,
현실은 그저 평범한 99명에 1명일 뿐이다.
모든 스프레드(가격정보)는 나라는 호구를 위해 깔려 있고, 나는 투명한 포커 카드를 들고
우쭐하게 도박장에 들어간다.
메이저(세력)들이 잘 깔아 놓은 타짜의
도박판에서 언제나 손목아지를 잘도 내어놓는다.
늘 배팅할 때마다 그걸 기억하라.
내가 배팅하는 그 순간은
메이저가 내 반대로 배팅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각설,
오늘은 조금 가볍고 감성적인 썰을 풀어보려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로 세계 정세가
들썩들썩하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그런데 결국 다 돈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각국의 이권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금융자본간의 싸움이 도사리고 있다.
아직도 정치, 문화, 사회가 경제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선을 코 앞에 둔 한국도 결국 후보들이
경제를 최고의 기치로 내세우는 이유다.
자본주의에서 먹고 사는 것.
그리고 욕심을 부리고 치장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최고로 중요한 가치다.
그리고 생계보다 위험한 무기는 없다.
날아 오는 포탄보다 당장 배고파서
아이가 우는 것이 더욱 공포스러운게 인간이다.
이렇게 잘 포장된 단어, 경제.
결국 모든 것은 돈의 문제로 귀결된다.
혹자는 그런 말을 할 것이다.
돈은 중요하지만 이 세상은
다 돈의 가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과연 그럴까.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 하고 싶다.
이 세상은 돈과 연관 없다고
생각하는 가치까지 싸그리
파고 들면 결국 다 돈 때문이라고.
가족 간에 갈등이 있는가?
배우자와 싸웠는가?
애인이 떠나갔는가?
아이때문에 머리가 아픈가?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가?
누가 자살을 했는가?
누구와 말 다툼을 했는가?
어떤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가?
결혼이 늦어져서 불안한가?
열심히 사는데도 맘 한켠이 불안한가?
그리고 오늘 날씨가 우중충해
기분이 괜히 울적한가?
우리의 내면은 모든 걸
기분 탓이라 돌린다.
우린 감정의 동물이므로.
허나 모든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돈이 충분했다면 일어나지 않거나
막을 수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이다.
삶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돈의 영향력이 끼치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린 그저 돈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저 삶에 다른 가치들이
더욱 소중하고 그런 것들의
나의 자존감과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본인도 한 때 그렇게 생각했다.
깡촌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나는 입신양명이 꿈이 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세상이 궁금했다. 삶을 즐겁게 살고 싶었다.
부모님은 왜 저렇게 열심히 사는가.
나는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가.
왜 사람들은 늘 경쟁하고 치고 박고 싸우는가.
왜 언론은 맨날 우왕좌왕하는가.
정말 이게 다 돈 때문은 아니겠지.
분명히 다른 가치가 있을거야.
내가 어려서 모르는 걸수도 있어.
나이가 들면 더 알게 될거야.
돈을 뛰어 넘는 철학과 가치를.
그리고 한 번 뿐인 나의 삶의 존엄성을.
나이가 먹을 수록
나의 생각은 더욱 산산히 부서졌다.
나의 공부도 노력도 가치도
삶의 원동력도 모든 나침반이
돈이라는 연료를 기반으로
돈이라는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 많은 철학책을 읽었다.
인간 본성의 철학적 성찰과
인문학적 소양과
인류의 근본과 생물학적 변이와
양자역학과 몬테카를로 수학과
십자군 전쟁과 동아시아 역사와
조던피터슨의 책들과
부처의 가르침을 다 읽고
받아 들였다.
수 만권의 책을 읽고 밤을 지새며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돈이 현실을 지배했다.
그런 모든 철학들이 현생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바탕이 지푸라기처럼
깔려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하물며 사랑까지도.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사랑도 돈이 깔린 마당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법이다.
더 좋은 가치 더 나은 삶을 위해
돈 없이 행복해질 방법은
종교적 귀의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걸 깨닫고 미친 듯이 투자를 했다.
파생을 했다. 죽음과 싸우는 사투.
미친 듯이 주식을 하고
미친 듯이 경제경영서적을 독파하고
미친 듯이 돈을 아끼고
24시간 돈 벌 궁리만 했다.
그런데 게을러서 몸 쓰기는 싫었다.
천성이 게으르고 힘든 걸 싫어하는 탓에
벽돌을 나르고 배달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애초부터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배고프면 하겠지만 괴로워 죽고 싶어했을거다)
그런 육체적 노동을 기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게 있을까.
결국 나의 노력은 회피의 역사다. 회피의 뇌다.
고생 안하고 돈은 벌어야 하니
투자 금융에 올인해야 했고,
점차 잃지 않는 갑옷으로 온 몸을 덧칠해야 했다.
극단적인 노동 회피가 금융 투자에 최적화된
뇌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의 최종 목적지는 돈의 풍요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삶의 묘미와 가치를 느끼며
행복한 순간들을 많이 누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은 열심히 하기 싫었다.
(다들 나 같은 생각으로 살겠지)
성격이 민감하고 예민해
학생 시절부터 공부 스트레스가
겹쳐지면서 만성 편두통이 수십년간
나를 괴롭혔다.
현재도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고 민감하다.
하지만 우습게도
어떤 시점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금융 자산을
보유하게 되면서 만성 편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놀랍지 않은가.
돈은 만병통치약 빨간약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정신적인 문제가 심하고
스트레스성 민감도가 강하고 생각이
많아서 편두통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냥 돈이 부족해서였다.
(알고나니 참 짜증이 났다)
돈이 의미하는 건 단순히 소비주의적인 행복이 아니다. 그것만 보고 달리는 사람은 하수다.
돈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불안을 줄여주고,
잠재적인 기회까지 제공해주는
놀라운 만능 치료제였던 것이다.
지금 다양한 일로 머리가 어질하고 두통이 있다면
당신은 그냥 돈이 부족해서임이 확실하다.
물론 돈으로 해결 안되는 일도 많다.
다만 인간의 모든 생로병사의 기본적인
사건사고들 외에 모든 것들은 돈 문제로
귀결된다.
다만 돈이 이 문제를 해결할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왜냐면 그 문제를 해결할만큼
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의 정신은 빠르게
진화적 합리화를 통해
다른 가치를 들이데며 문제의
원인을 다른데서 찾기 시작한다.
내가 말하는 것이 자칫
물질만능주의 혹은 천민자본주의적
뉘앙스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그것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그만큼 돈에 의해 지배 받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자신을 속이지 말고 경제적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돈의 망령이 삶의 가치를 제단하기
시작하면 삶은 정말 피곤하고 불행해진다.
돈은 결국 시간과 공간을 살 수 있는 권리이며,
내 삶의 선택과 루트를 정할 수 있는 1등석 티켓이다.
그러니 돈을 좋아하는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돈을 밀어내고 다른 가치가 나를 치유하고
불안을 잠재워 줄 것이라는 오판이 실수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죽어가는 운명이므로,
제한된 시간 속에 어떻게 행복의 비중을
늘려갈 것인지를 연구하는게
이른바 삶의 파생이다.
욕심과 만족의 어느 지점에서
삶의 감사함을 늘려가는 게임.
한편, 삶은 옵션과도 같다.
죽음이라는 정해진 만기까지
행복의 프리미엄을 열심히 불려가지만
결국 다시 제로로 수렴하는 단순한 숙명.
돈과 죽음이라는 이 처절한 롱과 숏을
적절하게 합성해 거기서 행복이라는 수익을
끄집어 내야 하는 지리멸렬한 싸움.
아무쪼록 그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길 바란다.
오늘도 미국장을 구경하다가 편안하게 잠이 든다.
수 많은 포지션과 주식들이 화려하게 움직이지만,
그건 그저 하나의 율동에 불과하다.
너무 많은 생각으로 악몽을 꾸곤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오히려 편안함과 행복을 느낀다.
가습기의 은은하고 일정한 소리와
강아지의 킁킁데는 소리와
창 밖으로 부딪치는 빗물 소리가 오늘따라 정겹다.
고급 스피커를 블루투스로 연결해 재즈를 튼다.
빗소리와 어울려 행복한 기분이 한층 오른다.
커피 향을 맡으며 아래 풍경을 내려다 본다.
문득 당연한 편안함과 행복함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결국 이게 다 돈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스스로 만들어 낸 기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