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우 게을러 글을 쓰지 않다가 오늘은 살며시 끄적여 본다. 그냥 심각하지 않은 뻔한 감성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일상적으로 하는 루틴들이 있다.
수십년간 같은 루틴도 있지만 몇년전에 추가된 것 최근에 추가된 것까지 다양하다.
나는 보통 새벽 5시쯤에 눈을 뜬다. 일찍 일어나는게 아니라 그냥 그때 눈이 떠진다. 한 때는 숙면 부족이라고 여기며 수면제를 먹고 푹자려고도 노력해봤지만 이제는 그러지도 않는다. 미국시장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내 몸이 체화된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 단톡방에 밀린 정보를 공유하고, 두어시간 정도 독서를 한다. 독서는 그야말로 명상의 시간. 심연의 시간이다. 새로운 책을 펼 때의 설레임. 오래된 책을 다시 펼 때의 편안함. 땡기는데로 책 한권 두 권을 집어들고 서재 한 켠 노란 스탠드 하나만 켜놓고 독서에 푹 빠진다.
7시 정도가 되면 집에 있는 모든 커텐 블라인드를 치고 햇살을 한 껏 받기 시작한다. 아침 햇살을 받는 것은 정신과 육체를 깨도록 도와준다. 하루 행복의 시작은 빛과의 조우다. 그리고 하늘도 한 번 올려다 본다.
아침에 TV를 틀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아침 장이 열리기전 TV를 틀었다가 잃은 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심리적 장벽을 둔지 오래다.
대신 고급 스피커를 블루투스로 연결해 온 집 안에 아침 재즈나 보사노바를 잔잔하게 틀어 놓는다. 아침 음악은 풍요의 일상을 만들어 준다. 우리는 늘 들려오는 음악에 익숙하지 내가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 공간은 심리를 만들고, 음악은 심리를 증폭시킨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친구 녀석이 사준 에스프레소 머신에 커피 한 잔이 나오는 소리와 그 향이 좋다.
따스한 아침 햇살과 잔잔한 보사노바와 향긋한 커피 한 잔 매우 소박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낸 행복한 아침 루틴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돈이란 주춧돌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긴 어렵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혹은 투자 수익률을 높이고 싶다면, 평소에 자기가 하지 않았던 루틴들을 만들어 보면 좋다. 그러한 작은 변화와 기쁨들이 뇌의 회로를 바꿔주고 인사이트를 높여준다.
8시40분에 열리는 동시호가를 보기도 하지만, 아침 장을 제대로 거래하기 위해 요란하게 모니터를 세팅하고, 온갖 데이터를 추적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모니터 한 개가 다이다. 더 이상 늘려서 소음에 노출될 마음도 없다. 20년간 투자하며, 거창하게 모니터 세팅을 해보기도 했지만, 모니터가 많은 것과 컴퓨터 성능이 좋은 것과 수익률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핸드폰으로 거래하는게 가장 편하다. 아비트리지 프로그램으로 거대 자금 매매를 하는 메쟈가 아니라면 모니터 갯수와 성능은 아무 의미가 없다.
밤 사이 나온 수 많은 지표와 떠도는 말 들. 역치와 임계점을 넘는 변화만 확인해 본다. 조지소로스는 몇 가지 지표만 확인해도 등꼴이 저리면 배팅의 신호라고 여긴다고 한다. 이른 바 정신(인사이트)과 육체의 완벽한 조화다. 가끔 인사이트는 이성을 넘나드는 정답을 알려준다.
아침 9시(한국 증시 시작), 밤 10시30분(미국 증시 시작/서머타임)의 시간은 모든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복잡한 시간이다. 모두가 주목하는 시간이지만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시간. 나는 애써 이 시간을 모른척 넘기려 애를 쓴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렇게 또 치고박고 흘러간다. 법륜스님이 그랬던가. 좋은게 나쁠수도 있고, 나쁜게 좋을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고 시장인 것 같다. 내가 애걸복걸한다고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다. 내 돈이 시장에 들어가 있건 없건 시장은 물흐르듯이 흘러간다. 나의 감정과 아무 관련이 없다. 허나 거기에 돈 한푼 집어 넣으면 시장이 마치 나를 위해 혹은 나를 약올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은 법이다. 시장은 외국인, 기관, 개인 모두가 이기고 싶은 메두사 같은 괴물이다. 한편으로는 그냥 자연(自然)이다.
요즘 주변에서 많은 죽음을 목격한다. 나이가 들어서 맞는 어쩔수 없는 생로병사인 것은 알지만, 젊은 시절 느끼지 못했던 상념들이 많이 생긴다. 오래 키우던 식물이 죽고, 강아지가 죽어가고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인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지병으로 사고로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본다.
이제는 좋은 일보다 슬픈 일들이 많은 인생의 변곡점에서 투자든 돈에 대한 생각도 사뭇 심리적인 좌표로 옮겨 간다.
돈은 인생에서 너무 중요하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우리의 모든 문제는 결국 다 돈때문인 경우가 태반이다. 다만 우리는 그걸 부정하고 싶을 뿐. 돈의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여기거나 제대로 알게 되면, 돈이 없을때 삶이 피폐해지거나 불안이 증폭된다. 우리의 야성적 본능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임으로 자기 회피주의를 발동해 과잉몰입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게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나중에 되봐야 알 수 있다.
허나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해 미친 듯이 거기에 몰입하고 사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생계를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 이상의 장식을 위한 부를 가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그곳에 쏟아 붇는 사람을 몇몇 봐왔다.
자신의 욕심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어디서 멈출 것인지 알지 못한채 높은 욕망을 위해 달리는 것은 절벽을 위해 내달리는 래밍의 삶이다.
인생의 변곡이 찾아오고 죽음과 맞닿는 시간들과 사건들이 많아질수록 돈의 영향력은 줄어든다. 돈으로 어쩔수 없는 생로병사의 진리가 삶을 흔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돈만 벌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세뇌되어 나이가 들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남은 여생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살지에 대한 충분한 숙고도 필요한 것이다.
돈을 벌면...난중에 잘되면... 이런 마음으로 배려와 행복을 미루기 시작하면, 밥 한끼 사는게 아깝고,소중한 것들을 스쳐 지나가며 살아간다.
사는데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데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돈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와 공간과 시간과 그 지속력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과거에 대한 미래이고 미래에 대한 과거이다. 우리는 매일 죽어가며 살아가는 존재다. 하루에 죽음을 세 번은 생각해 보라는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삶의 심연을 들여다 보기 시작할 때 삶을 도박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세상의 현상이 지배하는 논리는 자본과 돈이지만, 나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돈이여서는 안되는 모순이다.
돈과 소비에 미쳐 돌아가는 거대한 자본주의 수레바퀴 아래서 나는 어떤 지점에서 어떤 정신상태로 삶을 위로하며 살아갈 것인가. 무엇이 더 중요한지 소중한지 깨달으며 살아갈 것인가. 얼마나 당연한 것들을 더 잃어야 얼마나 더 외롭고 늙고 죽어가야 돈을 이기는 가치가 보일 것인가.
우리가 돈을 뜨겁게 사랑해야하지만 차갑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말)
인생에서 돈은 매우 중요하다. 넉넉해야 아침햇살이 더 따사롭고 재즈 음악도 아름답게 들리고 잠도 푹 자는 법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게 다가 아니다. 따뜻한 햇살아래 에스프레소 한 잔을마시며 행복을 음미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오늘도 누군가는 죽고 나도 죽고 부모님도 죽어간다.
젊은 시절의 욕망과 객기는 결국 돈이라는 나침반을 따라가지만, 나이들어 생기는 무기력은 죽음의 깨달음을 향해간다.
우리의 삶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종이배다. 삶도 생로병사도 그저 출렁이다가 한 점으로 수렴하는 단순한 숙명.
남은 인생이 더욱 풍요롭도록, 돈의 영향력과 무기력을 알고 돈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감사함을 모두 지니고 하루를 살수 있도록, 남은 인생 자체를 도박으로 만들지 않도록,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법을 배울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