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과 실력의 교묘한 조화(인생과 투자)

중력(Gravity); 돈의 무게를 이기는 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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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Gravity); 돈의 무게를 이기는 법

흑그루(블랙스완) 2023. 2. 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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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돈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


비가 오는 날은 타자를 치고 싶어 진다.
세상 속에 이방인처럼 살아온 맑은 날의
기억들과 퀘퀘한 미세먼지의 향연들은
빗소리와 함께 다시 땅 속으로 꺼진다.
 
우리가 비가 지하수가 되고 다시 수증기가
되어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
자연의 순환의 흐름을 제대로 알기만 
한다면 삶의 궤적을 크게 그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에 후회를 남기고
미래의 불안을 끌어다 놓고 현재의 욕망으로 괴로움을 안고 사는 지극히 결핍 많은 인간적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요즘 경기침체가 더욱 심해지며
여기저기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이 넘쳐 난다.
돈 빌려달라는 사람, 사업을 접는 사람,
가족과 싸우는 사람, 술 값 한 잔을 아까워하는 사람. 괴로운 시기와 돈의 출렁거림 앞에서 사람은
한 없이 치졸해진다. 놀랄 것도 없다. 그냥 그게 자기의 본 모습일 뿐이다.
 
투자와 사업으로 셀 수 없는 돈을 날리며
자기 욕망이 만들어낸 찌거기와 부작용인지라
누구에게 하소연 하기도 힘든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다.
작게 나마 누구의 탓이라도 하고 싶으련만
모든 원인과 결과의 재물이 자기 자신인 탓에
후회와 괴로움은 더욱 야속하게 살점을 파고 든다.
 

그래서 우리는 돈의 무게를 매우 무겁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질 수 있는 무게를 이고 싸워야 한다.
 
돈의 무게를 가볍게 보는 사람은
그릇이 작은데 많이 담고 싶은 욕망만 가지고 투자한다. 대부분이 이렇게 시작해 그렇게 망한다.
 
단 한 번도 자신이 어느 정도의 돈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돈의 움직임이 나를 힘들게 할 수 있는지 그 흔한 훈련을 한 적이 없다. 그 누구하나 알려준 적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돈의 무게에 억눌리고 상처받고 깔려죽는다. 하지만 그리곤 자본주의의 희생양 혹은 유동성 공급자로 전락한다.
자본주의가 생명체라면 그 피의 색깔은 파란색일 것이다. 죽은 시체에서 파란 피가 나온다.
 
돈의 무게를 극복해 나가는 것은 하나의 훈련과도 같은 지난한 작업이다. 마치 피트니스에서 더 무거운 역기를 드는 것과도 같다.
 
나는 그렇게 20여년이 넘는 세월을 돈의 역기를 조금씩 무겁게 하며 때로는 팔이 빠지며 투자해 왔다.

 
어린시절 할아버지가 주던 500원은 하루에 큰 선물이었다.
과자 하나 사먹고 저금할 정도의 귀여운 돈. 하지만 당시에는 하루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유아적 유희를 주기에 충분했다.
 
가끔 받던 세배돈 5000원 1만원은 내 통장을 두둑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악착같이 우체국에 가서 그 돈을 모았다. 돈에 미친 어린이는 돈이 만들어내는 레버리지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아버지와 낚시를 하러 근처 강에 자주 가곤했다.
아버지는 늘 라디오를 틀어 놓고 민물 낚시를 하셨다. 아버지와의 시간이 좋았지만, 나는 오후 5시만 되면 만화를 봐야했다.
나에겐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아버지와 함께라 갈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왜 라디오만 있고, TV는 가지고 다닐 수 없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런 것은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셨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나는 인천이나 수유 친척 집에 갈때마다 전파사를 드나들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에 무선 샤프 휴대용TV를 장만했다. 그동안 모은 거금 15만원을 들여 고민조차 없이 사버렸다.
안테나가 크게 달린 은색 미니 흑백 TV. 지직 거려 잘 나오지도 않았지만 나는 낚시를 가서 아버지 옆에서 작은 티비로 만화를 봤다. 가장 아끼던 보물이었다.
그런데 커서 생각해보니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TV가 아니었다.
어디서나 만화를 보고 싶은 자유와 욕망이었다.
 
대학교를 들어가 과외 알바 학교 알바를 하며 하루에 5만원을 벌기도 했다.
하루 5만원은 당시 하루종일 노가다를 뛰어야 벌수 있는 돈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투자로 하루에 5만원을 벌기도 했다.
그 5만원은 나의 몸을 쓰지 않고 오로지 나의 머리로만 벌어들인 불로소득이었다.
하지만 5만원을 잃기도 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투자에 미쳐 가며 어떤 날은 50만원을 벌기도 했다.
5만원 일때보다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50만원 부터는 무언가 삶의 혜택이 강해진다는 느낌이 생긴다. 
50만원. 일도 안하고 투자로만 번 50만원. 자존감이 올라가고 생활이 윤택해질 것만 같다. 하지만 이제 50만원 혹은 이상을 잃을 확률도 커졌다.
 
이제 500만원이다. 하루에 500만원을 벌고 잃는게 일상이 됐다.
하지만 이제 무덤덤하다. 돈의 흐름과 진폭과 파동으로 발생하는 당연한 자본의 증감으로 인식한다. 그렇게 레버리지는 커져간다.
 
오늘 5000만원을 벌었다. 단 하루에 말이다. 누군가에는 일년을 일해야 받는 금액이다.
하지만 5000을 벌었지만 나는 우동을 먹고 평양냉면을 먹고 가고 싶던 두부집에서 막걸리 한잔 걸치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 내 통장에 5000만원이 증가됐다는 것만을 인식할 뿐이다. 하지만 며칠만에 5000만원이 사라졌다.
다시 허무해서 술을 마신다. 20년을 넘게 해도 다시 잃고 한숨을 쉰다.
 
오늘 하루에 5억을 벌었다. 이걸 누구한테 말한들 이해해줄까. 누군가는 평생 벌어도 벌까말까할 돈인데 단 하루에 벌었다. 나 조차도 믿기지 않는다.
나는 미친놈이다. 기분이 좋은데 벌써부터 불안하다. 왜냐면 난 곧 5억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이걸 자랑할까. 아니면 하지 말까. 아니면 저축을 해볼까.
그렇게 500원에 하루가 행복하던 아이는 하루 5억을 벌고 불안해 한다.
 
오늘 하루만에 50억을....아직은 벌지 못했다.
이 장황한 일기가 나의 돈의 무게를 이겨내온 과정이다. 그리고 그 끝은 나도 모른다.
 
돈의 무게는 나의 경험과 투자철학과 모험정신이 교묘하게 결합돼 계속 커져왔다. 돈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내공과 정신적 근육은 한 없이 커진다. 하지만 그에 따른 엄청난 하강효과도 겪어야만 한다.
 
해변에서의 잔잔한 파도를 즐기는 사람은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 거대한 파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차근차근 해변에서 넘어지며 서서히 더 큰 파도를 맞아봐야 한다.
 
투자와 사업을 한답시고 큰 돈을 날리며 괴로워 하는 지인들을 보면 난 그 손실 이면에 자기가 겪은 거대한 레버지리의 교훈과 무게를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미움 받을 용기, 잃어 버릴 용기,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바다로 나가 파도에 부딛쳐 보는 용기.
그건 자기만의 노하우이며 끊임없이 단련해 온 돈의 무게를 극복하는 대근육이 된다.
 
투자와 사업의 성패, 그리고 인생의 섭리는 테칼코마니 같은 양과 음의 돈의 무게와 레버리지를 감당하는 사람에게만 기회를 준다.
 
크게 잃을 수록 더 크게 딸 수도 있다.
적게 잃어 본 사람이 크게 딸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어제 보다 돈의 무게에 익숙해져야만 가능하다. 잃는 시간들은 자본주의에 내는 정당한 수수료다.
 
하지만 우리의 욕망은 늘 적게 잃고 크게 따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같은 돈을 잃는게 따는 것보다 2~3배 이상 고통스러운 탓이다. 하여 우리는 늘 이길 생각만하고 지는 것은 회피한다. 그래서 막상 진자 게임에서는 지고 만다.
 
내가 오늘 크게 땃다면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손실을 예정하는 것이다.
내가 오늘 크게 잃었다면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수익을 예약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거대한 돈의 파동에 잘 올라타 수익을 내는 순간을 맛볼 뿐이다.
그리고 거대한 돈의 파도의 아래에서 손실의 괴로운 쓴 맛을 맛볼 뿐이다.
 
우리는 돈의 파동, 돈의 무게를 단련해 무던한 자기내면화에 집중해봐야 한다.
당장에 내가 잃고 있는게 다가 아니라 그 손실이 말해주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돈이 잠시 다가왔다 사라져도 괴로워 할 필요가 없다. 어자피 사라졌다가 다가오는 날들은 계속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의 무게를 극복하는 지리한 과정은 계속되야 한다.
내가 질 수 있는 적절한 돈의 무게를 겪으며 계속 담금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돈의 증감에도 무심한 심장을 가지게 되는데, 돈은 그때부터 알아서 굴러가게 될 것이다.
다만 슬프게도 삶은 더욱 권태로 빠져들 것이다. 
 
수 많은 실험과 번아웃과 번민과 환희의 반복이 가져다 주는 것은 철통같은 자존감이기도 하지만 한 없는 권태도 가져다 준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그 무심한 권태가 더 많은 돈을 불러온다. 돈은 깨달은 무심한 자에게 고양이처럼 먼저 다가온다.
 
그러니 지금 내가 돈의 무게로 괴로워 하고 있다면,
감사하게 생각하라. 그 무게로 찢어진 근육은 회복탄력성을 거쳐 더욱 무거운 무게를 이겨내는 근육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 번의 실패가 모든 실패가 아니듯이, 한 번의 성공도 영원하지 않다.
싸워서 이기려 하지 말고, 이겨 놓고 싸우는 투자를 하기 위한 끝없는 담금질일 뿐이다.
 
오늘도 돈 때문에 괴로운가.
그럼 이왕 잃은거 더 잃어서 더 괴로워보라.
그리고 폭발하는 화산 밑에서도 거머리처럼
살아서 다시 화산 꼭대기로 올라와라.
그런 생각이 없다면 돈의 무게는 평생 당신을
짓누루며 당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돈의 무게는 일종의 중력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중력의 영향을 벗어 날 수 없듯이 돈의 무게는 버릴수도 없고 기어이 극복해야만 자유로워 질 수 있다.
극복이 힘들다면 가볍게 만드는 법이라도 깨우쳐야 행복할 수 있다.
 
 
또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아무도 없는 비바람 부는 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거대한 파도가 
나타난다면 서핑을 하겠냐고.
 
나는 얼씨구나 평생 없을 기회를
맞이해 즐거운 맘으로 서핑에 나선다.
그리고 결국 무시무시한 거대한 파도를 정면으로 쳐 맞는다.
 
그리고 잠시 의식을 잃었다. 죽은 걸까.
하지만 눈을 떳다. 나는 아직 용케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더 성장했다.
다음 번에는 더 큰 파도를 맞이할 것이며, 
어느 날은 파도에 묻혀 눈을 뜨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서핑을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돈의 바다 앞에 다시 
서서 저 멀리 무거운 무서운 파도를 기다린다.
 
 

우리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 성장이 곧 삶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당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보도 섀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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