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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The Risk); 창문에 갇힌 파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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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The Risk); 창문에 갇힌 파리

흑그루(블랙스완) 2024. 10. 2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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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고?

 
 빨리 온 겨울, 눈오는 창 밖을 바라보다가
거실 창 밖에서 헤메이는 파리 한 마리를 보았다.
 
그 파리가 어디 구멍으로 어떻게 들어온지는 모르지만 아주 괴상한 공간에 갇혀 있었다.
 
파리는 이중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샷시 사이에
샌드위치 같은 공간에 끼어 갈팡질팡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동물원에 갇힌 애처로운 초식동물처럼
파리는 내가 인지도 못한 시간에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아주 애매한 공간에 갇혀 계속 방황하고 있었다.
 
유리에 박제된 표본처럼 파리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출구를 찾고 있었고 나는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파리가 알아서 출구를 찾아 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파리를 쫒기 위해 안쪽 창문을 연다면
파리가 옳다구나 하면서 실내로 들어올게 뻔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파리를 방치하였다.
 
다음 날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날씨에 환기를 하려고
창문과 방충망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창문틈에는 어제 그 파리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하루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리는 출구를
찾느라 모든 체력을 소진하고 먹을 것과 먹을 물조차  없는 큐브(CUBE) 같은 투명 공간에 갇혀 서서히 죽어갔을 것이다.
 
아마 그 파리가 그런 동력을 소진하지 않고 내가 오기만을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면 다음 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손쉽게 밖으로 빠져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설계한 공간에 들어온 파리는 크게 당황하며 빨리 탈출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을게 뻔하다.
자신이 어떻게 들어온지도 모르니 자신이 어떻게 나갈지는 더더욱 오리무중이었을것이다.
 
파리가 트랩에 갇혀 죽은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만든 창문 샷시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해서다.
분명 그 샷시에는 자기가 들어온 구멍이 있었음에도
파리는 들어오는 순간 그 입구를 잊고 다른 출구를
찾느라 전력을 쏟았다.
 
그 파리는 인간이 설계한 창문 샷시의
매크로한 구조를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인간에게는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편리한 장치이지만 파리에게는 가혹한
죽음의 트랩이 되는 이유다.
 
리스크는 스스로 리스크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리스크에 갇혀서 허둥지둥데다가
자본을 소진하고 멘탈이 나가 허둥지둥데다가
비자발적 유동성 공급자로 쓰여지고 시장에 버림받는다.
 
우리가 리스크라는 복잡계에서 늘 얻어 맞는 이유는
파리가 창문의 구조와 속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출구를 위해 질주하는 것과 진배 없다.
 
시장과 메이저의 입장에서 보면 투자자 혹은 투기자는 창문에 갇힌 파리다.
 
그들은 리스크의 강도와 정도를 정교하게 조정하며 투명하게 보이는 박스 안에 우리를 가두고 방치한다.
그리고 별 다른 노력 없이 그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난리를 치며 죽어간 변사체들의 전리품을
손쉽게 수거한다. 그리고 그 전리품으로 더욱 투명하고 단단한 유리를 만든다.
그리고 나서는 다음 파리가 어리둥절하며 좋다고 입장한다.
 
인간이 파리보다야 지능이 높겠지만 
시장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파리만큼 우둔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게 바로 시장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시장이 돌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우둔함과 쓸데 없는 오기가 시장을 구동시킨다. 불확실성이 시장에 기대감을 만든다.
우리는 기꺼이 시장의 연료가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파리가 죽은건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다.
파리는 그냥 다른 차원의 세상을 이해하는 구조적 철학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아서 죽었다.
 
인간이 만든 창문 샷시의 구조를 파리가 아무리 용써서 공부한들 평생 알리가 없다.
우리가 아무리 시장을 공부하고 노력해도 리스크라는 공포를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것과도 같다.
우린도 어쩌면 애초부터 리스크라는 불확실성의 사분면을 이해할 수 없는 도마뱀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만일 풍족한 지식이 잠재된 리스크를 줄여줄 수만 있다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야비한 시장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많은 지식이 비례한 수익을 주는 곳은 대학과 학문밖에는 없다.
이 파란 돈이 흐르는 자본의 바다에서는 복잡함이 더 많은 패배의 확률을 내포한다.
 
누군가는 이정도 읽었으면 글쓴이를 초보라 여겨야 한다.
리스크를 공포라고만 여기고 있다니...
자신이 그렇게 아직도 그렇게 인지하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초보의 심장. 심약한 투기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시장에서 닳고 닳은 투기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공포를 즐긴다.
변태적 시각과 퇴폐적, 무기력한 시선으로 시장의 흐름을 그저 응시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리스크가 공포가 아니라 열린 기회임을 인지한다.
 
리스크란 연속된 시계열에 포지션의 기회를 제공하는 변동성 장치에 불과하다는
매우 단순한 금융공학적 정의에 다다르게 된다.
리스크는 뻔한 시장에 알파 베타의 불공평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게 리스크는 하나의 정의로 수렴하고 투기자는 덧 없는 노력과 세월의 허무 속에 갇힌다.
이 시장은 초보, 중수, 고수도 결국 평균회귀하는 공평한 시장이다.
하지만 리스크의 정의를 깨달은 몇명에게는 불공평한 기회의 시장이 시작된다.
내가 시장에서 파리 정도로 남을지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는 제대로 된 투자자가 될지는 결국 자신의 인내와 선택에 달려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다가 어느 순간 될 수도 있는 돈오점수와도 같은 비합리적인 진화를 기대할 만한 영역이다. 그래서 더 두렵고 한편으론 더 짜릿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리스크에 대한 체화적 인지능력을 쌓기란 가장 어려운 영역이며,
단순히 수학과 공부로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찌보면 이는 오랜 시장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시행착오의 누적 시간이 오롯이 만들어준
시장 질서 너머 정신적 선(禪)의 수양 영역이다.
 
 
가끔 어떤 파리 한 마리는
다른 파리들이 한 것처럼 
유리창에 갇혀 무작정 살기 위해
출구를 찾기 위해 갈팡질팡 체력을
소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 유리 창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거대한 인간을 인지한다. 그 때 파리는 자신이 직면한 이 리스크의 실체를 잠시 나마 판단한다.
그리고 나의 이 트랩이 나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다소 뻔한 장치임을 알게 될 때,
파리는 생존 확률을 높이고 인간이 열어주는 기회의 시간에 유유히 창 밖으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우쭐한 파리 한 마리가 창문 안으로 들어온다. 
 
 

가능성이 낮은데도 수 많은 착각에 빠져 희망을 품고 매달리는 것은 주로 우연의 게임을 벌일 때이다.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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